"젊은층이 더 잘 걸린다" 번지는 'A형 간염 괴담(怪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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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환경서 자란 세대항체 없어 면역력 떨어져

환자의 80%가 20~30대(代) 2대(代) 4.4%만 항체 보유

서울 여의도의 S신탁운용회사 직원들은 요즘 회식할 때 폭탄주를 돌리지 않는다. 대신 각자 자기 술잔에 술을 받아 마신다. 여의도 금융가(街)에 유행하는 'A형 간염 괴담' 때문이다.

지난달 H투자자문사 소속 30대 펀드매니저가 A형 간염에 걸려 사망했고, 지난 주말엔 모 금융협회 종사자가 A형 간염에 걸려 쓰러지면서 여의도엔 비상이 걸렸다.

결국 S운용사는 26일 단체로 A형 간염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인근 G증권사 직원 김모(여·25)씨도 "회식할 때 찌개를 같이 떠먹지 말고 술잔도 돌리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위생의 역설'

여의도뿐 아니다. 이달 중순 서울 도봉구의 한 고교에서는 A형 간염에 걸린 한 학생을 매개로 한꺼번에 환자 11명이 발생했다. 그 후 이 학교는 급식대에 소독용 물비누를 비치하고 공동 식수대를 없앴다. 이 학교 L교장은 "학생들에게 개인 물병을 소지할 것을 권유하고 있으며 항체가 없는 학생 전원에게 예방 주사를 접종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7년 A형 간염 환자 수는 2233명이었으나, 지난해 7895명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올해 들어선 26일까지 5202명 발생, 작년 같은 기간(1990명)보다 2.6배 늘어났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김강모 교수는 "A형 간염은 2007년부터 갑자기 증가했다"며, "특히 20~30대 젊은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발생 환자의 80.3%가 20~30대였다.

A형 간염은 감염자 대변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가 끓이지 않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염되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다. 그런데 왜 유독 젊은 층이 약할까. 전문가들은 '부유(富裕)의 역설'로 설명하고 있다. "20~30대가 깨끗한 위생환경에서 자란 탓에 A형 간염 항체를 보유하지 못했고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A형 간염은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0~5세 유아가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가며 항체가 생기는 질병이었다. 반면 생활수준이 높아진 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층은 깨끗한 환경만 접하며 자란 탓에 '후진국형 질병'인 A형 간염 항체가 없고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강해연 교수팀(소화기내과)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 가운데 50~60대는 대부분 A형 간염 항체를 보유한 반면, 30대는 38.8%, 20대는 4.4%만이 보유하고 있었다.

◆예방접종이 가장 확실하지만…

A형 간염은 38도 이상의 고열과 피로감, 몸살 기운 등의 증세가 나오며 심하면 속이 메슥거리거나 토하기도 한다. 독감과 증세가 비슷하지만, 기침 같은 호흡기 쪽 증상은 별로 없다.

만성 간염인 B형 간염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B형 간염은 한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평생 보균자로 살아야 하지만, 급성인 A형 간염은 한번 걸렸다 나으면 다시 걸리지 않는다.

B형 간염은 간경화 등 중병으로 서서히 진행되기 쉽지만, A형 간염은 감염돼도 면역력이 강할 경우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가기도 한다. 반면 병의 진전 속도가 빠르고, A형 간염 환자 1000명 가운데 한 명꼴은 사망하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도영 교수(간암클리닉)는 "신종 플루는 전파력이 빨라 집단 발병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지, 병의 위험성 자체는 신종 플루보다 A형 간염 쪽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을 잘 씻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하고, 물을 끓여서 먹는 등 개인적인 위생만 잘 지켜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가장 확실한 예방 방법은 A형 간염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비용이 14만원(7만원×2회 접종, 0~5세 소아 4만원×2회 8만원)에 달해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때문에 일부 의사들 사이엔 "예방 백신을 맞아 두는 게 물론 안전하지만,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하면 굳이 무리해서 억지로 맞을 것까지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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