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25시]한방 분쟁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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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모 씨(29·여)는 살을 빼려고 한약을 복용했다. 복용 중 구토와 욕지기 증세가 나타났다. 소화불량이라는 생각에 잠시 복용을 중단했다. 구토 증세가 사라진 후 이 씨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2주 후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생겼다. 대학병원을 찾아가니 ‘급성 독성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한약 때문에 급성 독성간염이 생긴 것일까.

독성간염이 한약 부작용 71%

한약을 먹고 ‘약해(藥害·약물 부작용)’가 생겼다는 호소는 한방 의료분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자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1999∼2005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한방 관련 피해사례 구제 115건을 사고 내용별로 분류해보니 약해가 27%(31건)로 1위를 차지했다. 약해를 세분해 보면 독성간염이 7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부장애와 위장장애가 각각 2위와 3위였다.

한약재와 독성간염 발생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의사들은 “한약 복용이 급성간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의사들은 “한약 복용과 급성간염은 거의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1000여 개 한약재 중 10여 개만 빼고 나머지 대부분은 간염을 일으키는 독성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한의사들의 설명이다.

한방은 정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분쟁이나 소송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한방 분쟁 관련 상담은 756건이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요건이 갖춰져 조사할 수 있는 건수는 21건에 불과하다.

한방 분쟁이 생길 때는 ‘설명 소홀’(부작용에 대해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지 않아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지 않음)이나 ‘주의의무 위반’(환자에게 증상이 생겼는데도 의사가 치료를 중단하지 않음)으로 과실 책임을 묻는다.

다이어트 한약을 먹은 이 씨의 경우에는 ‘설명 소홀’로 피해보상을 받았다. 한의사가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 구토, 오심이 발생했는데도 약 복용을 멈추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또 이 씨는 한약 복용 중단 후 간 상태가 호전(간수치 50% 이상 감소)돼 약물로 인한 간 손상임을 증명할 수 있었고 약재에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마황’이 들어 있었다는 점도 참작됐다.

한의사들은 “한약이든 양약이든 잘못 먹으면 간이 나빠지는데 한약만 간수치를 올리는 약인 양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1000여 가지 한약재 중 ‘거의 쓰이지 않는’ 10가지를 뺀 990가지 한약재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같은 과실 반복 안되게 노력을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사례 중 독성간염을 포함한 약해가 많고 이런 피해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한약은 한의사가 처방한 것이 아니라 ‘○○건강원’처럼 비전문가가 처방한 것”이라는 식의 설명은 한의계 전체를 깎아내릴 수 있다. 부작용이 생겼다면 왜 생겼는지 따져보고 앞으로 같은 과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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