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저체중] 몸매 만들려다 몸이 무너질라

정우석 0 7176

[커버스토리/청소년 저체중] 몸매 만들려다 몸이 무너질라



[중앙일보 박태균.강정현] 여고 2년생인 신모(서울 서초구)양은 식사 때마다 부모와 전쟁을 치른다. 신양은 키 1m70㎝, 체중 46㎏(신양의 키에 맞는 정상 체중은 63㎏이다.)으로 언뜻 보기에도 마른 체형이다. 하지만 42㎏까지는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단했다. 4개월째 생리가 없고 어지럼증·전신무력감 등 영양 결핍 증상이 나타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식사는 하루 한 끼 정도, 그것도 소량이다. 이따금 과도하게 먹었다고 여겨지면 입에 손을 넣어 토하곤 했다. 이 때문에 손등엔 치아에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구토로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약을 먹어 일부러 설사를 유도했다. 결국 '거식증' 진단을 받아 요즘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과체중·비만 등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건강 문제가 저체중이다. 지난 8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건강검사 실시 결과를 발표하면서 저체중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초·중·고생의 저체중 비율이 2007년 5.8%에서 지난해 6.1%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교과부 학생건강안전과 조명연 사무관은 “대한소아청소년학회가 정한 연령별 표준 성장곡선에서 하위 5%인 학생을 저체중으로 분류했다”며 “다이어트를 위해 무리하게 굶거나 편식 등이 저체중의 주된 원인일 것”으로 풀이했다.

정상인데 비만이라 착각, 무리한 다이어트

요즘 학생은 정상 체중이거나 심지어 저체중이라도 자신을 비만으로 여긴다. 실제 저체중인 여중생의 70%가 '체중 조절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중생도 3명 중 2명이 다이어트에 관심을 보였다. 또 남중생의 41.1%, 여중생의 44.5%가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있거나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지, 2008년).

여고생 503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56.4%가 체중 감량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한국가정교육학회지, 2008년).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신경옥 교수는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면 골격을 이루는 칼슘, 혈액을 구성하는 철분이 결핍될 수 있다”며 “청소년의 저체중은 성장 부진, 전반적인 체력 저하, 잦은 피로, 빈혈·생리 불순,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 감소를 동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녀의 저체중을 무조건 무리한 다이어트·편식과 이로 인한 열량·영양의 부족으로만 여겼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저체중의 원인이 다른 데 있는데 “좀 많이 먹어라. 운동 좀 해라”고 구박하면 심각한 질환의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최민규 교수는 “결핵 등 소모성 질환이나 만성 복통(소화성 궤양,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장결핵 등이 유발)으로 인한 식욕 부진 탓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영양의 상대적인 부족 여부, 식사량·활동(운동)량 등을 점검한다. 심리 상태와 가족·교우 관계 등을 고려해 자녀의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체중은 절대 가벼이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비만과 마찬가지로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2006년 8월호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은 BMI가 22 이하일 때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비만과 저체중이 모두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U자형 곡선을 그리는 것. 저체중이 사망률을 높이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잘 모르지만 성인의 BMI가 23∼24.9일 때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이나 청소년기에 저체중이면 성인이 돼서도 그대로이기 십상이다.

성인 되면 비만 못잖게 사망 위험 높아져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유은경 교수는 “청소년은 체중을 빼려다 영양 부족으로 키가 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칼슘·비타민D의 섭취가 부족하면 골밀도가 낮아지고, 심하면 골격변형·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척추·대퇴골 등 체중을 지탱하는 뼈는 비만할수록 골다공증 위험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체중이면 체중에 의한 뼈의 자극이 적어져 골다공증이 쉽게 발생한다.

저체중은 때때로 정신·사회적인 문제도 일으킨다. 마른 체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원인인 섭식장애가 단적인 예다. 반대로 마른 체형이 자신감 부족, 심리적 위축 등을 일으켜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촉발하기도 한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용주 교수는 “저체중 청소년 중에서 요주의 대상은 전혀 먹으려 들지 않거나(신경성 식욕부진증) 먹고 나서 구토·배설하는(거식증) 경우”라고 지적했다. 거식증,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섭식장애다. 둘 다 청소년, 특히 여학생이 주로 걸린다. 거식증이 있으면 체중이 미달인데도 살찌는 것에 대해 심한 공포를 보인다. 자신이 심각한 저체중 상태임을 부인한다. 여성은 최소 3개월 이상 생리가 끊긴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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