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은 약 “햇빛 좀 가려줘!”

정우석 0 7436

더위 먹은 약 “햇빛 좀 가려줘!”

[동아일보]

《서보배 씨(26·서울 관악구)는 최근 눈이 따끔거려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급성 세균감염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안약을 처방해 줬다. 처음 이틀 정도는 약효를 보는 듯했다. 따끔거리는 증상이 약화된 듯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증상은 악화됐다. 안약을 넣으면 오히려 더 따끔거렸다. 약물을 적게 사용해서 그런가 하고 안약을 몇 차례 더 넣었다. 그러나 증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서 씨는 가까운 약국을 찾아 이유를 물었다. 약사는 “안약을 더운 데에 두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서 씨는 안약을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창문 옆에 3일 동안 놓아둔 사실을 떠올렸다. 안약이 상한 것이다.》

혈압-천식약 등 직사광선 쬐면 주성분 분해

당뇨약 먹은 뒤 자외선 노출 땐 피부발진도

여름철에는 음식만 상하는 게 아니다. 약도 상한다. 서 씨처럼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더운 곳에 약을 보관하면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자주 발생한다.○ 약에 따라 보관법 제각각

대부분의 약은 습기, 직사광선, 열에 영향을 받기 쉬우므로 마개를 잘 닫아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는 서늘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직사광선이나 높은 온도에 노출되면 약의 성분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법과 용량을 지켜 복용하는 것만큼 약을 올바르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사광선에 의해 쉽게 약의 주성분이 분해되기도 한다. 고려은단 등 아스코르빈산 정제, 딜라트렌 정(종근당) 등 혈압강하제, 자디텐시럽(한국노바티스) 등 천식약이 이런 경우다. 조제된 항생제 시럽은 높은 온도에서 약의 성분이 분해된다. 이런 약들은 냉장고에 보관하고 유통기간이 경과됐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옵타낙점안액(삼일제약) 등 안약, 마야칼식나잘스프레이(한국노바티스) 등 뼈엉성증(골다공증) 약 등도 반드시 냉장고에 보관한다.

모든 약을 어둡고 찬 냉장고에 보관하는 건 옳지 않다. 약에 따라 이런 보관법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천식을 치료하는 흡입제는 얼거나 온도가 너무 차면 오히려 약효가 떨어진다. 안약도 차갑게 보관하려다 자칫 얼게 되면 쓸 수 없어진다. 따라서 약효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품 포장이나 설명서에 적힌 보관방법을 확인하고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도록 설명서를 반드시 보관하는 게 좋다. 설명서가 없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온라인 복약정보방’(medication.kfda.go.kr) 홈페이지에서 제품명을 검색하면 보관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 여름에는 광과민 반응 주의해야

여름철에는 평소 먹던 약을 별 생각 없이 먹고 햇빛이 강한 야외로 나갔다가 예상치 못한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어떤 약들은 복용한 후 자외선에 노출될 때 피부에 발진이나 화상, 물집 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광과민 반응이라고 한다.

광과민 반응에는 크게 광독성 반응과 광알레르기 반응 등 두 종류가 있다. 광독성 반응은 약의 분자가 특정 자외선의 파장을 흡수한 뒤 주변의 피부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 대개 약을 처음 복용하고 햇빛에 노출된 지 24시간 안에 노출된 피부 부위가 빨갛게 변하고 통증이 수반되는 화상 증세로 나타난다. 광알레르기 반응은 피부에 직접 바르는 약이나 제품이 자외선을 만났을 때 피부의 단백질과 합쳐져 일으키는 알레르기성 발진을 말한다. 햇빛에 노출된 후 1∼10일 뒤 발진 증상이 일어나며, 나중에 다시 햇빛에 노출되면 24∼48시간 안에 또 증상이 나타난다.

광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약 가운데는 항생제, 항류머티스약, 소염진통제, 고혈압약, 당뇨병약 등 일상적이고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게 많다. 따라서 평소 부작용 없이 복용하던 약이라고 해도 광과민 반응을 일으킬 위험이 없는지 약에 첨부된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주의해야 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