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머리숱, 졸아드는 여자 마음

정우석 0 7383

[커버스토리/여성 탈모] 줄어드는 머리숱, 졸아드는 여자 마음



[중앙일보 박태균.신인섭]

주부 김모(50·서울 천호동)씨는 40대 초반부터 탈모를 치료하기 위해 어림잡아 2000만원 이상은 썼다. 두피 마사지, 두피 관리, 고가의 샴푸 등 주변에서 '탈모 예방에 이롭다'고만 하면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머리숱은 속절없이 줄었다. 마침내 지난해 8월 김씨는 병원에 도움을 청했다. 김씨의 주치의는 “환자의 아버지가 남성형 탈모(대머리)이고, 외가 쪽에도 가족력이 있었다”며 “앞머리 선(헤어라인)은 유지되면서 정수리의 모발이 가늘어지고 적어지는 전형적인 안드로겐 탈모(여성형 탈모)”라고 진단했다.

스트레스·우울감 남성보다 심해

대다수 탈모 전문의들은 여성 환자가 최근 몇 년 새 빠르게 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여성의 탈모는 대체로 남성보다 가벼운 편이다. 그러나 탈모에 대한 실망감·스트레스·우울감은 남성 이상이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40대 초반의 탈모 여성이 수치심·절망감을 느낀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다”며 “탈모가 여성에게 혹독한 질환임을 새삼 인식했다”고 말했다.

탈모 문제로 최근 2년간(2007년1월~2008년12월) 중앙대병원 탈모 클리닉을 찾은 환자(574명)의 남녀 비율은 약 1.7(361명) 대 1(213명)인 것으로 조사됐다.('대한피부과학회지' 2009년 7월호)

이 조사에서 여성 환자 4명 중 3명은 유전적인 요인(가족력)과 관련된 안드로겐 탈모였다. 2위는 원형탈모증(18.3%)이었다.

연령별로는 여성 환자 10명중 3명은 40대. 이어 20대(26%)·30대(24%) 순이었다. 이는 외모에 관심이 큰 20대(37%)가 가장 많이 병원을 찾는 남성과 대조를 이룬다.

이 조사에서 여성 환자의 56%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긴 것은 자녀·가족·학업순이었다.

유전, 갑상선 이상, 빈혈, 다이어트 등 원인

여성 탈모의 원인은 안드로겐 탈모 외에도 다양하다. 갑상선 이상·빈혈·난소 이상(다낭성 난소증후군) 등 질환으로 인한 탈모도 있다. 여성은 갑상선 질환에 걸릴 위험이 남성의 5배 이상이다. 갑상선의 활동이 너무 과도하거나(항진증) 부족한 것(저하증)도 탈모를 부른다.

강동성심병원 피부과 김상석 교수는 “여드름·생리불순이 있는 여성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동반될 수 있다”며 “탈모 여성은 난소 이상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으로 인한 탈모는 그 질병을 치료하면 치유된다.

다이어트·스트레스·피임약·임신·출산·폐경, 과도한 스타일링도 여성 탈모의 유발 요인이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모발의 원재료인 단백질은 물론 오메가-3 지방·아연·철분·비타민 B12 등 모발 건강에 유익한 영양소의 공급 부족을 초래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탈모 예방을 위해 매일 자신의 체중 ㎏당 0.8g(50㎏ 여성은 40g)의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권장한 것은 이래서다.

산후 탈모는 출산 후 6개월 지나면 회복

홍보회사에 다니는 원모(31·성남시 신흥동)씨는 지난 6월 첫딸 출산 후 극심한 산후 우울증을 경험했다. 모발이 한두 달 사이에 낙엽 지듯 빠진 것이 우울증의 도화선이었다. 고민 끝에 지난달 건국대병원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조금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이양원 교수는 “정상적으로 빠져야 할 모발이 임신 도중 호르몬 변화로 멈춰있다가 출산 후 한꺼번에 빠지는 현상”이며 “출산 후 6개월가량(그 이상도 가능) 지나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농도가 정상화하면서 탈모도 해소된다”고 설명했다. 자연 치유되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심한 다이어트에 의한 탈모도 보통 3개월쯤 지나면 원상 회복된다. 약보다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 낫다.

늘림머리·말총머리·과도하게 땋은 머리 등은 여성에게 견인성 탈모를 유발한다. 이런 탈모는 대개 일시적이다. 머리를 '못살게 굴지' 않으면 대부분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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